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의 철도 환경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미국 철도의 초창기는 [[19세기]]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. 증기 기관의 발명과 영국의 철도 산업의 시작 이후 미국에서도 이런 신기술의 도입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이렇게 깔린 노선들에서 큰 배장기와 알록달록한 장식으로 대표되는 초기 미국식 [[증기 기관차]]가 운행을 하였지만, [[20세기]] 이전에는 기술의 한계로 시속 20km를 넘기는 열차를 보기가 힘들었다.[* 서부영화에서 기차 뒤를 쫓는 열차강도가 그래서 가능했다.] 그래도 철도가 혁명적이었던 운송수단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이를 대체할 탈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데다 확장을 반복하던 초기 미국의 역사에서 철도는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. 이 당시 미국인들이 서부로 뻗어나가며 새로 만드는 마을들과 그에 따라 새로 생기는 교통, 산업수요로 인해 철도 노선들이 서부로 꾸준히 뻗어나갔다. 수많은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철도 노동자들의 선로 부설, 열차 강도 등의 장면들이 이 시기에 나온 것. 남북전쟁 등이 있는 초기에는 각 [[사철]]이 난립하면서 각각의 [[궤간]]이 달랐다. 표준궤, 협궤 수준이 아니라 더 많았는데, 각 사철이 자기들 열차를 타 사철이 빼앗거나 하는 걸 막는 등의 여러 이유가 있었다. 이때의 철도 지도에는 방대한 양의 철도가 물흐르듯 이어져 있지만, 실제로는 각 궤간들의 차이로 인해 철도들이 분리되어 있었다. 사철들이 멋대로 역과 노선을 만들었기에 [[리치먼드]]의 경우 5개의 노선이 모이는 철도 중심지였지만 기차역 또한 5개로 모든 노선이 분리되어 있었다. 모든 노선이 따로따로 놀아서 환승, 상차, 하차의 중심지라고 생각하는게 이해가 편할 정도. [[남북전쟁]] 후에는 북군이 승리하면서 표준궤로 궤간이 통일되었다. 미국의 역사는 철도의 발전과 분리될 수 없다. [[남북전쟁]]에서 북부가 촘촘한 철도망으로 보급을 수월히 해 남부에 서서히 우위를 점해 항복시킨 것은 유명하고, 전후에도 미친듯이 깔린 철도망으로 미국 철도의 전성기가 시작된다. [[서부개척시대]]도 철도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. 수운으로는 물자와 여객을 대량수송하기에 장소의 제약이 많았고, 마차로는 그 많은 이민자나 화물을 수송하기 어렵고, 아직 자동차나 비행기는 없었다. 그리하여 유일한 육상교통수단으로서 철도가 부설되기 시작하였고[* 그리고 이때 중국인 이민자들이 공사 인부들로 많이 들어왔다.], 이 시기에 현재의 미국철도 광역간선망 노선은 거의 다 만들어졌다.[* 일례로 [[매사추세츠 주]]에 위치한 약 7km가 넘는 길이의 장대터널인 후삭(Hoosac) 터널을 무려 '''[[1875년]]'''에 뚫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.] 미국이라는 통합성과 정체성을 만든 첫 기폭제 또한 철도였다. 상용 항공 노선과 [[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]] 시스템이 없었던 시대에 철도는 [[로키 산맥]]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뚫어 동부-서부를 연결하는 첫 교통로를 개척해 주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미국의 국력을 성장시키는 데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. 하지만 [[1920년대]]에 자가용이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보급되면서 입지가 조금씩 줄었고, 그래도 장거리 수송에는 절대적이었지만, [[1950년대]]에 전국적으로 [[고속도로]]가 뚫리기 시작하고, [[미국 전차 스캔들|주요 도시 지역에 설치되어있던 노면전차들이 대체 노선 없이 폐쇄되며]] 자가용 수요를 촉진하고 도시/광역여객 수요를 떨어뜨리면서 철도는 점점 자동차에 밀리기 시작하였다. 거기에 [[1970년대]]부터는 항공운송의 발달로 철도는 장거리 여객운송에서 본격적으로 쇠락한다. 철도가 여객운송에서 우위를 점하는 거리는 [[4시간의 벽|500~600km 이하의 중단거리 수송]]인데,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땅덩어리가 크니까 그만큼의 거리는 자동차에 밀리고, 그 이상 거리는 비행기에 밀려 버린 것이다. [[파일:PRR_vs_NYC.jpg|width=70%]] [[시카고]] 엥글우드 구간에서 병주 중인 [[펜실베이니아 철도|PRR]]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Broadway_Limited|브로드웨이 리미티드]](좌, [[PRR S1]]이 견인하고 있다)와 NYC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20th_Century_Limited|20th 센츄리 리미티드]](우). 둘 다 [[펜실베이니아역(뉴욕)|뉴욕]] - [[유니언 역(시카고)|시카고]]를 연결하는 특급열차로 직접적인 경쟁관계였다. 사진의 증기 기관차들은 현대 기준으로도 엄청나게 크고 고출력을 자랑하던 차량들인데 저 괴물급 차량들이 여러 회사에서 경쟁적으로 투입되던 것. 그래도 여객 철도의 전성기는 있었다. 20세기 초 대공황 시대, 탄탄하게 쌓인 여객 수요와 준비된 선로 인프라를 기반으로 각종 여객 열차들이 각 지역들을 연결했으며 큰 경쟁력인 빠른 속도를 얻기 위해 고출력 열차 개발과 Streamliner(유선형 열차)의 디자인 경쟁 또한 치열했다. 1930년대 후반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은 세계에서 10위권 내에 가장 빠른 열차는 모두 미국의 유선형 열차들이었다. [[펜실베이니아 철도]]의 [[PRR S1]] 이라든가 [[PRR S1|PRR T1]] 같은 괴물 증기 기관차들[* PRR T1은 [[PRR S1]]의 양산형으로, 보다 진보된 기술과 산업디자인이 적용되었다. 이 기관차종은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기기관차라고 일컬어지는데, 신호소를 무려 250km/h로 통과하다가 딱 걸려서 벌금을 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. 그러나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[[LNER A4]] 4468 "맬러드"호의 202km/h다. 한참 후 1960년대 일본에서 전동차인 [[신칸센]] [[0계]]가 처음 등장하던 당시 시속이 180~200km/h(최대 220km/h)였던 걸 생각하면 증기기관차로 저 속도를 낸 게 경이로운 수준.]과 '''브로드웨이 리미티드''' 특급열차, 그 경쟁관계인 뉴욕 센트럴 철도의 '''20th 센츄리 리미티드'''[* 뉴욕-시카고 노선의 장거리 열차. 직역하면 "20세기가 가까이" 지만 20세기 특급 이라고 부르는 것이 의미가 확실히 전달된다.]같은 특급열차들을 굴리고 있었다. 지금은 [[유니온 퍼시픽]]에 매각된 서던 퍼시픽 운송 회사의 SP 4449 Daylight도 1957년까지 운행되었고 1934년에는 Pioneer Zephyr 는 디젤 기관차에 스테인리스와 최신 용접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제작된 열차였다.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고급화 또한 상당해서 객실 내부의 화려함 또한 지금의 것과는 비교를 불허 할 정도다. [[https://www.google.co.kr/search?q=american+locomotive+streamliner+interior&tbm=isch|20세기 특급의 내부 인테리어의 모습]]. [[http://www.sandpointtrainstation.com/images/sp4449_sandpoint_lg9.jpg|맨 마지막 칸은 스카이탑 라운지]]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. 하지만 이같은 전성기도 앞서 언급했듯이 시간의 흐름에 밀려 1950년대 말에 이르렀을 땐 이런 열차들도 점점 사라져갔고, 과거의 거대한 역사들만을 남긴 채 노선들은 폐선되어 뜯겨나갔으며 일부 화물철도와 그나마 수요가 남아있던 여객 철도가 살아남으면서 철도회사들 또한 여러 방향으로 재편되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. 현재의 미국 철도는 완전히 화물철도 위주로 바뀌며 조금씩 선로들을 줄여나가고 여객이나 새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거의 없다시피 해 오다 2010년대를 지나며 점차 늘어난 대중교통에 대한 논의와 수요에 맞춰 다시 삽을 뜨거나 새 열차를 들여오며 여객철도에 조금씩 숨통을 트이게 하는 중이다. 물론 아직 갈 길은 아주 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